의회주권 議會主權의 원리
의회주권 Sovereignty of Parliament 혹은 의회우선주의 Supremacy of Parliament는 영국 헌법의 가장 전통적이며 중요한 원리이다. 이 개념은 A.V. Dicey에 의해 정립되었으며, 의회가 영국 내에서 최고의 입법권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Dicey는 의회주권議會主權의 세 가지 핵심 요소를 강조했다.
첫번째, 의회는 어떤 법률이든 제정하거나 폐지할 수 있는 최고 입법 기관이다. 두번째, 어떤 의회도 그 이전 의회에 구속되지 않으며 후속 의회를 구속할 수도 없다. 어떠한 법률도 헌법적 우위를 가지지 않으며 스스로를 성문 codified 헌법처럼 영구적으로 고정될 entrenched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의회 제정법 Act of Parliament은 동일한 지위에서 다른 법률에 의해 폐지될 수 있다. 세번째, 국왕 The Crown과 사법부 The Judiciary를 비롯한 그 어떤 다른 기관이나 개인도 의회가 제정한 법률의 유효성을 부정하거나 무효라고 선언할 수 없다.
역사적 기원과 법적 확립
역사적으로 영국의 의회주권議會主權 원리는 1688년의 명예혁명 Glorious Revolution을 거쳐 확립되었으며, 권리장전權利章典 Bill of Rights 1689를 통해 보장되었다.
권리장전 제9조 Article 9 Bill of Rights는 의회 내의 발언과 토론은 법원이나 의회 외의 장소에서 탄핵되거나 문제시 되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여, 의회의 자유로운 토론권을 확립했다. 이는 의회가 외부의 간섭 없이 입법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한 핵심 규정이다.
보통법과 판례법을 통한 발전
의회주권議會主權은 보통법 Common Law과 판례법 Case Law에 의해 구체적으로 발전해왔다.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입법 명부 Parliamentary Roll에 기재되면 법원은 그 유효성을 문제 삼지 않으며 무효라고 선언하거나 절차적 정당성을 거론하지 않는다. Edinburgh & Dalkeith Railway v Wauchope (1842) 8 C1&F 710 이를 Enrolled Act Rule이라고 칭한다.
이후의 판례에서도 법원은 의회의 절차적 불규칙성을 문제 삼거나 의회의 입법 과정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의회 제정 법률의 효력 여부를 다루지 않음을 다시 확인했다. Pickin v British Railways [1974] AC 765
그러나 최근 판례에서는 매우 특별한 상황, 예를 들어 법치주의 Rule of Law를 훼손하는 극단적 입법이 등장할 경우에는, 법원이 의회주권의 절대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했다. R (Jackson) v A-G [2005] UKHL 56 이는 Parliament Act 1949의 효력에 대한 사법부의 도전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의회주권 議會主權의 구체적 작용
영국의 의회주권議會主權 원칙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의회주권은 주로 의회의 제정법 Statutes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며, 의회의 입법 권한에 한계가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의회의 제정법은 국제법 보다 우위에 있다. Cheney v Conn [1968] 사건에서 법원은, 영국의 조세법이 제네바협약 Geneva Conventions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배척하고, 의회의 법률이 국제법보다 우선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의회는 헌법적 관습 Constitutional Conventions 조차 무효화할 수 있다. Madzimbamuto v Lardner-Burke [1969] 사건에서 법원은 로디지아 Rhodesia 위기의 상황에서 의회의 입법권이 헌법적 관습을 넘어선다고 판결했다.
의회는 헌법 자체도 변경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Act of Settlement 1701이나 European Communities Act 1972가 대표적이다. 다만 ECA 1972는 European Union (Withdrawal) Act 2018과 후속 입법에 의해 2020년 Brexit 완료 시점에서 폐지 repealed되었다.
의회는 소급 retrospective입법을 할 수도 있다. Burmah Oil v Lord Advocate [1965] 사건에서 법원은 정부의 전쟁행위에 대한 보상 책임을 인정했으나, 의회는 War Damage Act 1965를 제정하여 해당 판결을 소급적으로 무효화했다.
의회는 국왕대권國王大權 Royal Prerogative을 제한하거나 폐지할 수도 있다. Crown Proceedings Act 1947는 국왕이 불법행위나 계약 위반에서 면책되는 특권을 폐지했다. A-G v De Keyser [1920] 사건에서는 특정 영역에서 의회가 법률을 제정하면 동일한 사안에서의 국왕대권은 중단된다고 판결했다. R v Home Department, ex p Fire Brigades Union [1995] 사건에서도 법원은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아직 시행 이전이라 하여도, 의회가 입법한 법률의 존재를 무시하고 국왕대권에 기반한 권한 행사를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Fixed-term Parliaments Act 2011을 제정하여 국왕의 의회해산권을 폐지했으나, 이후 Dissolution and Calling of Parliament Act 2022로 해당 법률을 repeal 하여, 총리 Prime Minister의 조언에 따라 국왕이 해산권을 행사하는 국왕대권이 오히려 회복되기도 했다.
법률의 폐지와 개정
의회주권議會主權은 후속 입법을 통해 이전 법률을 폐지하거나 개정할 수 있음을 포함한다. 이는 명시적 폐지 Express Repeal와 묵시적 폐지 Implied Repeal,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의회가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여 이전의 법률을 명시적으로 폐지 repeal하는 경우가 명시적 폐지에 해당한다. 반면, 새로운 법률이 이전의 법률과 충돌하는 경우에는 이전 법률의 효력이 정지되며 묵시적으로 폐지된다. Ellen Street Estates v Minister of Health [1934] 1 KB 590
의회주권 議會主權의 한계
이론적으로 의회주권議會主權은 무제한으로 효력을 갖지만, 영국의 현실정치 상황과 헌정질서의 맥락에서 여러 한계를 가진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의 독립적인 사법체계와 교회제도를 보장하는 Acts of Union 1706-07의 경우 사실상의 부분적 성문헌법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의회가 해당 법률을 이론적으로 폐지할 수는 있어도 정치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슷한 사례로, 중앙 권력을 지방 의회와 행정부에 부분 이양하는 Acts of Devolution의 경우에도, 런던의 Parliament가 Scotland Act 1998, Government of Wales Act 1998, Northern Ireland Act 1998 모두를 폐지하는 것이 법적,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더라도, 이미 이양된 권한들을 단지 법률 폐지로 회수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현실성이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과거 식민지들에게 독립을 부여한 법률들도 이론적으로 폐지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또한 법원은 묵시적 폐지 Implied Repeal의 방식은 헌법적 성격을 갖는 법률 Constitutional Statutes들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Thoburn v Sunderland Council [2002] 4 All ER 156 예를 들어, Magna Carta 1215, Bill of Rights 1689, Human Rights Act 1998 등은 헌법적 법률이므로 명시적 폐지 Express Repeal에 의해서만 무효화할 수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의 과정에서 European Communities Act 1972가 European Union (Withdrawal) Act 2018에 의해 명시적으로 폐지된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절차와 형식에 의한 제한
의회주권議會主權에 관한 논의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절차와 형식 Manner and Form’ 이론이다. 이 이론은 의회가 입법 행위를 통해, 후임 의회가 법률을 폐지하거나 개정하기 위해 따라야 할 절차적 요건을 정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즉, 후대의 의회를 일정한 절차 Manner나 형식 Form으로 구속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이미 의회는 Parliament Act 1911과 Parliament Act 1949를 제정하여 상원 House of Lords의 권한을 축소하여 입법 절차를 간소화했다. 이와 유사하게, 의회가 절차를 더 엄격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어떤 법률을 폐지하려면 단순 과반수 대신 2/3 이상의 다수결을 요구하거나,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요건을 부과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A-G for New South Wales v Trethowan [1932] 사건에서 호주 New South Wales 의회는 특정 법률을 폐지하려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법률을 입법했다. 그러나 이후 의회는 국민투표 없이 폐지를 시도했고, 최종심 법원인 영국 Privy Council은 그 시도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 사례는 Manner and Form 요건이 실제로 후임 의회를 구속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연방 및 식민지 사건의 최종심 법원인 Privy Council의 판결은 본국 영국 법원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한계와 더불어, New South Wales 의회는 영국 의회 Parliament에 종속된 하위 입법기관 Subordinate Legislature이므로, 해당 판결이 판례법 Case Law로 기능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다.
이후 영국 법원도 Manuel v A-G [1983] 사건에서 법원은, 특정한 법률의 개정이나 폐지를 위해 특별한 조항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Manner and Form 절차가 존중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해당 내용은 판결의 Ratio가 아니라 Obiter로 남겨졌기 때문에 구속력 있는 법리는 아니다.
일부 학자들은 Bill of Rights 1689에 의해 Parliament라는 개념 자체가 헌정적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의회가 스스로를 절차적 요건으로 구속하려는 시도는 의회의 본질적 정의에 반하며, 단순한 법률로는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있다. 결국 Manner and Form 이론의 법적 지위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Henry VIII Clause에 의한 제한
Henry VIII Clause 헨리 8세 조항이란, 절대왕정 시기의 헨리8세가 의회의 승인 없이 법률의 효력을 변경하는 칙령을 포고했던 방식처럼, 행정부가 의회의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기존 법률을 개정하거나 폐지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조항들을 비판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Henry VIII Clause는 의회만이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수 있다는 의회주권議會主權 원칙에 반한다.
대표적으로 s 10 Human Rights Act 1998은 법원이 특정 법률이 유럽인권협약 ECHR과 양립할 수 없다고 선언했을 때, 정부가 신속한 Fast-track 절차를 통해 해당 법률을 개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의회의 정식 입법 절차를 우회하는 효과를 가지므로, 의회주권을 사실상 제약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European Union (Withdrawal) Act 2018도 많은 Henry VIII Clause를 포함했다. Brexit 이후 유럽연합법 EU Law들을 국내법 체계에 편입 및 정비하는 과정에서, 내각 장관 Cabinet Minister이 의회의 심의 없이 광범위한 수정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위임은 민주적 정당성을 훼손하고 의회의 입법권을 사실상 행정부에 넘긴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법치주의 원칙에 따른 제한
법치주의 Rule of Law 원칙도 의회주권議會主權 원칙을 제약할 수 있다고 본다.
R (Jackson) v A-G [2005] 사건에서 법원은 판결의 Obiter로 여러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Lord Steyn은 의회주권의 개념 자체가 보통법 Common Law의 산물이므로, 만약 의회가 법치주의에 반하는 입법을 시도할 경우 법원은 보통법에 의거하여 그러한 입법을 제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의회 스스로 무제한적인 절차적 변경을 시도할 경우, 의회주권 원칙에는 부합할 수 있어도 법치주의 및 민주주의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만약 의회가 극단적인 입법 행위를 감행할 경우, 예를 들어 사법부를 폐지하거나 Judicial Review 사법심사 등의 핵심 기능을 제거하려 한다면, 법원이 이를 용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이는 Dicey의 전통적인 의회주권議會主權 원칙에서 멀어진 현대적 시각이다.
유럽인권협약 ECHR에 따른 제한
유럽연합 탈퇴 Brexit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여전히 유럽인권협약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ECHR) 서명국의 지위와 의무를 지고 있다. 의회는 Human Rights Act 1998 (HRA)를 제정하여 ECHR을 영국 국내법에 통합했다.
동법 3조 s 3 HRA는 법원이 다른 모든 법률들을 해석함에 있어 ECHR에 명시된 인권 Human Rights들과 합치되도록 해석할 것을 규정한다. 만약 어떤 법률이 ECHR과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동법 4조 s 4 HRA에 의해, 불합치 선언 Declaration of Incompatibility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법률을 무효화지는 않는다.
법원은 HRA가 부여한 해석에 대한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왔다. R v A (No 2) [2002]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의 요청을 받아들여 Youth Justice and Criminal Evidence Act 1999의 조항을 법문에 없는 단어를 사실상 추가하여 읽는 방식으로 ECHR과 합치한다고 해석하였다. 또한, Ghaidan v Mendoza [2004] 사건에서는, Rent Act 1977의 조항에 대하여 문언적 해석 Literal rule을 적용하면 불합치 가능성이 있으므로 적극적인 목적론적 해석 Purposive approach을 적용하여 ECHR에 합치한다고 판결하였다.
법원의 불합치 선언은 법률을 무효화하지 않지만, 정부는 정치적 압력에 의해 법률을 신속히 개정했다. R (Anderson) v Home Dept [2002] 사건에서 Crime (Sentences) Act 1997의 한 조항에 대한 법원의 불합치 선언이 나오자, 바로 그 다음 해에 Criminal Justice Act 2003를 발의하여 해당 조항이 폐지되도록 했다. 또한 Belmarsh Case [2005] 사건에서 Anti-terrorism, Crime and Security Act 2001에 대한 불합치 선언이 내려지고 3개월 만에 개정이 이루어졌다.
결국 유럽인권협약에 관하여 법원이 불합치 선언을 내리면 행정부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해당 법률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새로운 헌법적 관습 Constitutional Convention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헌법적 관습은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의회의 개정 논의나 절차를 밟지 않고, 법원의 선언에 의거하여 행정부가 개정 혹은 폐지 법안을 발의하도록 허용하므로, 의회주권議會主權 원칙에 반한다.
물론 의회가 Human Rights Act 1998를 이론적으로 폐지할 수는 있으나, 정치적으로 현실성이 거의 없다.